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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흔히 "단순한 모험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원작 소설을 직접 한 달 넘게 읽어보니 그 말이 얼마나 피상적인 평가인지 실감했습니다. 2주면 충분했을 귀향길이 10년의 방랑으로 바뀌는 이야기, 그리고 그 여정을 놀란 감독이 영화로 옮겼다는 소식에 저는 주저 없이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원작 줄거리 — 10년 귀향의 실제 경로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敍事詩)입니다. 서사시란 영웅의 행적을 웅장한 운율로 노래하는 장편 시 형식으로, 오디세이아는 총 24권 1만 2천여 행에 달합니다. 제가 이걸 번역본 소설로 읽었는데, 워낙 길고 고유명사가 쏟아지다 보니 한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에는 이만한 작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의 승리입니다. 이타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는 배 12척에 병사 600여 명을 나눠 태우고 귀향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전쟁 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줄 알지만, 실제 원작을 보면 당시 항해술의 한계 때문에 풍랑, 역병, 왕권 교체가 귀향 길의 상수(常數)였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그 극단적인 사례였을 뿐이죠.
경로를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키코네스 족을 약탈하다 72명을 잃고, 풍랑에 떠밀려 로토파고이(연꽃 먹는 자들)의 섬에 닿습니다. 그 열매는 일종의 망각 유발 물질로, 먹은 부하들이 귀향 의지 자체를 잃어버립니다. 그다음이 제가 원작에서 가장 긴장하며 읽었던 장면입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키클로페스)의 동굴에 무단 침입했다가 동료들이 잡아먹히는 상황, 오디세우스는 거인을 술로 취하게 만든 뒤 눈을 찔러 탈출합니다. 문제는 폴리페모스의 아버지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다는 것입니다. 포세이돈의 저주는 이후 여정 내내 따라다닙니다.
바람의 마스터 아이올로스에게 받은 바람 주머니를 부하들이 호기심에 열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한숨이 나왔습니다. 이타카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터진 실수였으니까요. 이후 식인 거인 라이스트리고네스에게 배 11척을 한꺼번에 잃고, 마녀 키르케의 섬에서 1년을 보내고, 죽은 자들의 세계 하데스(저승)에 내려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데스란 그리스 신화에서 사자(死者)들이 머무는 지하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살아 있는 인간이 발을 딛는 것 자체가 금기에 해당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에서 이미 귀향했다가 살해당한 아가멤논을 만나 경고를 듣습니다. "집에 돌아가도 아무도 쉽게 믿지 마라."
세이렌의 노래, 여섯 머리 괴물 스킬라와 대소용돌이 카립디스 사이의 선택, 태양신의 신성한 소 무단 도축까지. 일반적으로 이 부분을 단순한 '판타지 장애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읽으면서 각 사건이 오디세우스의 판단력과 절제심을 시험하는 구조라는 걸 느꼈습니다. 결국 부하들은 전원 죽고, 오디세우스 혼자 요정 칼립소의 섬에 표류합니다. 칼립소는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약속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거절합니다. 7년을 그 섬에 머물면서도 매일 바닷가에서 이타카 방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제게는 가장 인간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 폴리페모스(키클로페스): 외눈박이 거인, 포세이돈의 아들 — 저주의 시작점
- 하데스(저승): 살아 있는 자가 내려가 예언을 구하는 초현실적 공간
- 스킬라와 카립디스: 여섯 머리 괴물 vs. 대소용돌이, 최악 중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 칼립소의 섬: 7년 억류, 불멸을 거부하고 인간으로 살겠다는 선언
- 파이아케스 족: 항해 민족, 최종 귀환을 도운 조력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 영웅담이 아닌 한 인간의 이야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전에 접했던 오디세우스 관련 작품들은 대부분 그를 천재적 전략가이자 거의 무결한 영웅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영웅이 아니라 실수하고 오만하고 그 대가를 치르는 한 인간이었습니다.
제가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의문이었던 지점이 있었습니다. 왜 신들은 오디세우스를 이토록 가혹하게 다루는가. 원작에는 트로이 전쟁 승리 직후 그리스 연합군이 저지른 행위들 — 신전 모독, 학살, 약탈 — 이 언급되는데, 이것이 아테나를 포함한 신들의 분노를 산 원인으로 제시됩니다. 제가 소설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문맥이 흩어져 있어서 전체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놀란 감독 영화는 바로 이 인과 관계를 영상으로 명확히 보여줬고, 제 머릿속에 남아 있던 의문이 한 번에 해소됐습니다.
놀란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휴브리스(hubris)의 개념입니다. 휴브리스란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지나친 오만을 부릴 때 쓰던 단어로, 반드시 신의 응징(네메시스, nemesis)을 불러온다고 믿었습니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전쟁 후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들 — 신전 모독, 방화, 약탈 — 이 전형적인 휴브리스였고, 10년의 방랑은 그 결과로 읽힙니다. 이 개념을 영화가 시각적으로 풀어낸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제작 방식이었습니다. CG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지중해 일대 촬영지를 직접 찾아가며 찍었다는 점인데, 그 덕분에 화면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질감이 달랐습니다. 고대 서사시의 스케일을 현실감 있게 구현하는 데 이 선택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신화 소재 영화는 CG로 도배된다는 인식이 있는데, 제 경험상 이번 작품은 그 공식을 완전히 깼습니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재회 장면, 108명의 구혼자들을 상대로 한 최후의 싸움, 아버지 라이어테스에게 인사드리는 장면까지 — 원작 서사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각 인물의 감정선을 현대 관객이 체감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에서는 소설 속 문장으로만 상상했던 긴장감이 실제로 전해졌습니다. 호메로스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디세이아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노스토스(nostos), 즉 '귀향'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체성 회복의 서사로 해석됩니다(출처: Britannica, Odyssey). 놀란 감독의 영화는 그 해석을 가장 충실하게 시각화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이아가 현대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확인됩니다. 코언 형제의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가 대표적 예시로 꼽힙니다(출처: Britannica, Ulysses). 제가 소설을 읽은 뒤 영화를 보니, 원작에서 흐릿했던 맥락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순서를 바꿔서 영화 먼저 봤어도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디세이아 원작 소설은 얼마나 읽기 어렵나요?
A. 일반적으로 고전이라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번역본 기준으로 천천히 읽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다만 고유명사와 신들의 계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저는 메모해 가며 한 달 정도에 걸쳐 읽었습니다. 처음엔 영화나 요약 영상으로 전체 흐름을 잡고 원작에 들어가는 방법도 효과적입니다.
Q. 오디세우스가 10년이나 걸려 집에 돌아온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A. 표면적으로는 포세이돈의 저주와 부하들의 실수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작을 더 깊이 읽으면, 트로이 전쟁 직후 오디세우스와 그의 병사들이 저지른 신전 모독과 약탈 등 휴브리스(지나친 오만)가 신들의 분노를 산 근본 원인으로 제시됩니다. 놀란 감독 영화도 이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Q. 놀란 감독 오디세이 영화는 원작과 많이 다른가요?
A. 주요 사건의 흐름은 원작 서사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인 만큼 감정선 표현과 특정 장면의 비중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소설과 비교해 보니 오히려 영화가 인과 관계를 더 명료하게 정리해 준 측면이 있어서, 원작의 이해를 돕는 데도 효과적이었습니다.
Q. 페넬로페는 왜 20년 동안 구혼자들을 거부할 수 있었나요?
A. 페넬로페는 시아버지 라이어테스의 수의를 짜는 척하며 시간을 끄는 방법으로 구혼자들을 지연시켰습니다. 낮에는 짜고 밤에는 다시 풀어 재촉을 피한 것이죠. 일반적으로 그녀를 단순히 기다리는 인물로 알고 있는데, 원작에서는 오디세우스 못지않은 지략가로 묘사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총평
오디세이아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가장 단순한 목표를 가진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장소를 찾아가는 항해가 아니라, 오만의 대가를 치르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노스토스(nostos), 즉 귀향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귀환이 아닌 자기 회복의 서사라는 점이 이 작품을 수천 년이 지나도 생명력 있게 만드는 이유라고 봅니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으셨다면 놀란 감독 영화를 먼저 보시는 것도 좋은 순서입니다. 제 경험상 영화로 전체 구조를 파악한 뒤 소설로 들어가면 훨씬 몰입감이 올라갑니다. 두 가지를 모두 접하고 나면, 왜 이 이야기가 수천 년째 인류 곁에 남아 있는지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