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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 제목만 봤을 때 그냥 평범한 연애물인 줄 알았습니다. '옵세션(Obsession)'이라길래 두 남녀가 집착하고 질투하는 멜로드라마 정도로 예상했는데, 실제로 보고 나서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저 예산 공포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연출이 탄탄했고,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렇게 무서운 방식으로 해부한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소원의 역설 - 6달러짜리 장난감이 만든 비극
이 영화의 설정 자체가 굉장히 영리합니다. 남주인공 베어는 직장 동료 니키를 오래 짝사랑하지만 고백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다 골동품 가게에서 '원 위시 윌로우(One Wish Willow)'라는 6달러 99센트짜리 장난감을 사게 되는데, 버드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싸구려 마법 도구입니다. 제가 영화관 좌석에 앉아서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진짜로 이루어지겠어?" 라고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근데 실제로 이루어지더군요.
여기서 이 영화가 다루는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소원의 추상성과 현실의 구체성 간의 괴리'입니다. 쉽게 말해, 소원을 빌 때는 몇 가지 조건만 막연히 담아 빌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촘촘하게 얽혀 있다는 뜻입니다. 베어가 빈 소원은 "세상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니키를 원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문장 어디에도 니키의 자유 의지나 행복, 정신 건강에 대한 조건은 없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공포 영화의 판타지 장치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 민담의 '세 가지 소원'과 달리 이 영화의 소원은 단 하나뿐입니다. 세 개면 첫 번째 실수를 나머지로 만회할 여지가 생기지만, 하나뿐인 소원은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이 설정 하나로 감독 커리 바커(Cory Becker)는 인간이 꿈을 이루고 난 이후의 삶, 즉 이루어진 꿈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딜레마를 영리하게 끌어들입니다. 가게 주인이 장난감을 팔면서 "다시 찾아와서 행패 부리지 말라"고 했던 그 한마디가, 뒤늦게 얼마나 많은 걸 암시했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습니다.
- 소원은 하나뿐 — 실수를 되돌릴 기회 없음
- 소원의 내용에 상대방의 자유 의지는 포함되지 않음
- 가게 주인의 경고 대사는 복선이자 이 영화 전체의 축약
집착 공포 - 낭만의 극단은 왜 공포가 되는가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불편하게 느꼈던 부분은 사실 잔인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낭만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였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진 니키는 베어를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출근을 못 하게 막고,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새벽 3시에 잠든 베어를 그냥 바라보고 있습니다. 베어의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그의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들은 처음엔 과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게 뭐가 무서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실제로 영화관에서 보면서 이 행동들이 발라드 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 즉 "너만 있으면 돼", "한시도 떠나기 싫어"의 문자 그대로의 실현이라는 걸 깨닫고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낭만적인 감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현하면 그게 오히려 공포가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정확히 짚어냅니다.
연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니키 역의 인디 에버렛(Indy Everett)은 같은 장면 안에서 사랑스러운 표정과 무언가 비어 있는 눈빛을 동시에 보여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레스토랑 데이트 장면에서 뱉는 "기분 좋게 데이트 하려던 거 아니었어?" 라는 대사는 별것 아닌 말인데, 그 말이 나오는 타이밍과 표정 조합이 진짜 소름이었습니다. 문에 덕트 테이프를 발라놓고 "문이 안 열리면 그냥 나랑 있으면 어때?"라고 웃으며 말하는 장면은 제 기준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습니다. 이 연기를 처음 보는 배우가 해냈다는 점에서 더 놀라웠고, 실제로 이 역할 이후 마블 시리즈 엑스맨의 로그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감독의 연출 감각도 주목할 만합니다. 니키가 죽은 고양이 샌디를 위해 꽃을 가져오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끝까지 니키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떤 각도에서도 표정이 보이지 않도록 인물의 동선을 설계한 겁니다. 이런 연출은 돈이 드는 게 아닙니다. 감각의 문제입니다. 저 예산으로도 이런 장면이 가능하다는 게 커리 바커 감독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출신이라는 배경과 연결됩니다. 영상 언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참고로 저는 여주인공이 삐죽 웃는 표정을 보면서 한편으론 귀엽다고 느꼈는데, 아마 그게 이 영화가 노린 불쾌한 골짜기 효과(출처: Wikipedia - Uncanny Valley)였을 겁니다.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얼굴이 맥락과 어긋날 때 더 소름끼친다는 바로 그 원리 말입니다.
사랑과 자유 의지 - 이 영화가 진짜 묻는 것
이 영화를 단순히 "집착하는 여자 무서워요" 라는 식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오히려 베어라는 남자의 행동을 더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는 니키의 동의 없이, 그녀의 의사와 완전히 무관하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니키를 원한다"는 소원 안에는 니키라는 인간 자체가 없고, 오직 자신을 사랑하는 역할로서의 니키만 있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입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인 '주체성 상실(Loss of Agency)'이 등장합니다. 주체성 상실이란, 개인이 자기 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빼앗기는 상태를 말합니다. 니키는 강제로 사랑하는 역할에 앉혀졌습니다. 그 결과 그녀의 원래 꿈, 즉 직접 사랑을 경험해서 진짜 '러브 스토리'를 쓰고 싶다는 열망은 완전히 왜곡됩니다. 강제로 경험한 감정을 바탕으로 쓸 수 있는 건 결국 집착과 집착이 만드는 비극, 즉 로맨스 소설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과 결국 쓰게 된 것 사이의 간극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슬프게 느낀 지점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더 생각하게 된 것은, 베어가 이연과 니키 사이의 2년 관계를 뒤늦게 알고도 "소원을 없애줄 테니 다시 이연이랑 사귀면 되지 않아"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니키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니키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 정리를 위한 도구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를 내 이야기의 등장인물로만 보는 실수를 하기 쉬운데, 이 영화는 그 실수의 극단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런 집착적 사랑의 패턴은 '에로토마니아(Erotomania)'와 일부 맞닿아 있습니다. 에로토마니아란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망상적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 증상으로, 실제 연구에서도 이러한 집착적 관계 패턴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전체에 해를 끼친다는 점이 지적됩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원(NIMH)). 영화는 이 지점을 판타지 장르 안에 녹여내면서도, 보고 나면 현실적인 질문을 남깁니다.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방의 역할을 원하는가?"
열린 결말 - 장난감의 행방과 시즌2 가능성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저는 잠깐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결말이 모든 걸 해소해 주지 않아서입니다. 풀리지 않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원 위시 윌로우의 행방입니다. 그 장난감이 어디에 있는지, 다음 소원은 누가 빌었는지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쉬웠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열린 결말이 오히려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소원을 빈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우리가 두 시간 동안 봤습니다. 다음 차례가 누구인지를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포가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니키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직접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그 행동 하나로 처음부터 니키가 베어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정리됩니다. 소원이 없었더라면 두 사람의 관계는 영원히 평행선이었을 것이고, 베어가 빌었던 그 소원은 결국 니키를 얻은 게 아니라 니키라는 사람 자체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얻었지만 그 사랑의 주인공은 없어진 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시즌2가 나올 것 같다는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커리 바커 감독이 유튜브에서 자체 제작 영화를 올리다가 이번에 정식 개봉까지 한 커리어를 보면, 이 세계관을 확장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장난감 하나가 계속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는 구조라면 앤솔로지 형식으로도 이어갈 수 있고, 원위시윌로우를 만든 존재나 그것의 기원을 파고드는 방향도 가능합니다. 영화관에서 볼 것을 강하게 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음 스피커의 진동입니다. 제가 직접 앉아서 느꼈는데, 긴장감이 고조되는 장면마다 좌석에서 울려오는 진동이 화면과 맞물려서 몰입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청소년 관람불가여서 잔인한 장면이 있긴 하지만 찡그릴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킬링타임용으로도, 커플이나 부부끼리 보고 나서 이야기 나누기에도 딱 맞는 영화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옵세션 영화 무섭나요? 호러 약한 사람도 볼 수 있나요?
A. 점프 스케어나 고어 장면이 거의 없어서, 호러를 잘 못 보는 분들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공포는 피가 나오는 장면보다 일상적인 행동들이 기묘하게 어긋나는 순간에서 더 강하게 왔습니다. 심리 공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오히려 더 무섭게 느낄 수 있습니다.
Q. 옵세션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열린 결말인가요?
A. 네, 열린 결말입니다. 원 위시 윌로우의 행방이 명확하게 처리되지 않고 끝납니다. 이를 아쉬워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의 공포를 지속시키는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봅니다. 마지막 니키의 행동 한 가지가 전체 관계를 재해석하게 만드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시길 권합니다.
Q. 커리 바커 감독이 누구인가요? 유튜버 출신이라고요?
A. 커리 바커(Cory Becker)는 배우이자 코미디언, 유튜버로 활동해온 1999년생 감독입니다. 2024년에 자체 제작 영화를 배급사를 찾지 못해 본인 유튜브 채널에 올렸는데 그게 크게 화제가 되었고, 이번 옵세션이 그의 첫 정식 극장 개봉작입니다. 제작비 대비 650배에 달하는 수익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유튜브 세대 감독들이 저예산 호러·스릴러로 메인스트림에 진입하는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Q. 옵세션 몇 세 관람가인가요?
A. 청소년 관람불가입니다.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있지만 극도로 잔인하거나 불쾌한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잔인한 장면 보기엔 청소년 관람 기준에 적절하지 안다고 생각하고,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강렬하게 풀어가기 때문에 성인 이라면 누구나 볼수있을것 같습니다.
결론
옵세션은 제가 올해 본 영화 중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이야기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겉으로는 공포 영화지만 판타지 장치를 걷어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쉽게 상대의 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저 예산, 신인 배우, 유튜버 출신 감독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았고, 특히 영화관의 사운드와 함께 봤을 때 극장 경험의 이점을 제대로 살린 작품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가능한 한 영화관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난 뒤에는 "나는 상대방을 원하는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줄 역할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질문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